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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그웬돌린, 정의로운 연애 리뷰

 

"내 얼굴에 홀리지 말고 귀담아 들으십시오."

 제일스 최대 마약 조직의 보스인 윌리엄의 잃어버렸던 아들이라며 나타난 세바스티안 알링턴. 2년 만에 수도 치리에서 제일 잘나가는 도박장을 만든 유능한 이로, 본처의 아들인 에드워드의 일방적인 견제를 받는다. 여자로 보일만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것과는 달리 대단한 완력을 가진 그는 제시 헤일리를 문란한 사람으로 오해하여 질투한다.

 

 

 

네 얼굴이 아무리 예뻐도 홀리지는 않거든?

 에드워드의 부하로 첫손에 꼽히는 제시 헤일리. 에드워드의 생일이자 어머니의 기일에 과하게 술을 마시는 바람에 세바스티안과 하룻밤을 보내게 된 후, 꾸준히 관계를 지속하게 된다. 슬슬 그와의 잠자리를 정리하려고 하지만 쉽지가 않다.

 

 

 

 

 

 강스포일러 주의.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이 떠올랐다. 어머니, 형, 아버지……. 벼락이 치고 천둥이 울리던 비 오는 밤, 모두가 살해당하던 그 날이.

그날 나도 미쳐버렸다.

 일가족이 참혹하게 살해당하는 것을 본 후, 오로지 복수를 위해서 살아온 제시 헤일리. (장르 소설 캐릭터 중 나의 가장 아픈 손가락...ㅠㅠ) 8년을 원수의 밑에서 온갖 일을 겪으며 기회를 노려왔다. 그런 제시가 8년 만에 접하게 된 따뜻한 온기에 속절없이 휘청인다. 클로이(세바스티안으로 위장잠입한 요원)의 가벼운 스킨십에 약해지고, 무사하냐고 묻는 말에 위로받는 제시. 사랑에 빠진 클로이가 언뜻언뜻 보여주는 상냥함에 뒤흔들리는 그 모습이 어찌나 애처로운지... 하지만 제시는 그러한 따뜻함마저 포기하고 끝내 비정하게 복수에 성공한다. 

 

 복수가 끝난 제시의 곁에는 클로이보단 좀 더 다정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클로이이기에 제시가 진창으로 빠지지 않고 평범한, 다시 행복할 수 있는 세계에 남을 수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또 약간(?) 피학적인 성향인 제시에게는 클로이가 가장 적합하리라... 독자인 내 취향따위가 뭐라고 제시의 행복을 방해한단 말인가! ㅠ0ㅠ...

 

 

 

 

 

 사실 세련됐다거나 문장이 아름다운 글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로운 연애가 나의 최애작인 이유는 소설의 중심 소재인 '복수'를 다루는 방법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복수를 꿈꾸는 주인공인 소설을 읽을 때면 어떻게 복수에 성공할지만을 기대해왔으나, 복수를 위해서 주인공이 얼마나 진창에 빠져 있는지, 그리고 그 복수의 끝이 얼마나 허망한지에 대해서는 쉽게 간과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에게, 이 작품은 복수의 본질에 대해서 상기시켜준다.

복수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눈은 다 똑같다. 자신을 파괴하고 있는 사람의 서글픈 눈. 과거에 매여서 눈앞을 볼 수 없는 그 아련한 눈동자.
복수라는 건 복수의 대상까지 자신을 끌어내려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복수는 도박과 비슷하다. 원금을 손실하기 일쑤이고, 원금을 회복하면 시간과 노력과 그동안 겪었던 마음고생이 생각나서 그 이상을 가지려고 하게 되며, 그리고 다시 쫄딱 망한다.
복수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남은 건 아무런 목적도 없어진 허무한 인생인 현실뿐이다. 

 

 또한 이 작품에서는 압도적인 신체능력을 가진 정부 요원인 클로이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롯이 제시 혼자서 복수를 기획하고 성공한 점도 무척 좋았다. 수는 필사적으로 해내고자 하는 일을, 공은 쉽게, 혹은 가볍게 도와줘서 성공하는 작품을 보며 아쉬움을 느낄 때가 많았기 때문에, 제시 스스로 복수를 끝마쳤던 점이 가장 좋았다. 

 

 그리고 메이데이X3의 주인공, 바실리 카민스키가 잠깐이지만 소설 속에서 언급된 점도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두 작품이 같은 세계관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 작가님께서 이벤트성으로라도 메데페데 X 정연 외전 혹은 썰을 풀어주시면 정말 좋을텐데... 

 

 

 

 

 

 그웬돌린님 작품 중에서 유독 영상으로 보고 싶은 작품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정의로운 연애다. 작가님 작품을 읽을 때 종종 마치 영화를 보듯, 드라마를 보듯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장면이 펼쳐질 때가 있었는데, 정의로운 연애에서는 공항장면이 그러했다. 전혀 과장없이 정연을 수십번을 재탕해왔는데, 공항장면은 읽을 때마다 새롭게 짜릿해진다.

(사실 공항 장면 전부를 인용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 가장 좋았던 클로이 대사만을 인용해본다.) 

"한 번 도망자의 인생을 선택하면 평생 도망쳐야 해. 그러고 싶은 거야? 제3세계에 가면 뭔가 잘될 거 같아? 천만에. 거긴 네가 지난 8년간 살았던 그런 삶 그대로야."
"대신에 나와 정의로운 연애를 하자. 너는 이제 그 더러운 진흙탕에서 구를 이유가 없어. 거기서 나와. 나와 깨끗한 연애를 하자. 그냥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연애를 하자. 나와 살자."

 

 공항에서의 클로이의 제안에 답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완벽한 본편 엔딩까지 좋았던 작품이었다.

"정의로운 연애를 하자면서요."

(…)

"살짝 정의감을 발휘해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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