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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그웬돌린, 갈라테이아 리뷰

 

 

 

 

 

 꽤 센스 있는 정보꾼으로 정평이 난 에츠 하다트. 한국이름으로는 장채원. 사람을 잘 찾는 것으로 유명한 그에게, 매우 아름답지만 미친놈이 찾아와 협박하며 사람을 찾아달라 의뢰한다.

 

 

 

 "저에게는 폴 일렌을 만나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생사가 달린 중요한 문제입니다."

 

 자신이 안드로이드라고 주장하는 디. 망가지고 있는 자신을 수리하기 위해 로봇 공학자인 폴 일렌을 찾는다. 그렇지만 디는 에츠 하다트를 만나면서 폴 일렌을 찾는 것을 포기한다. 에츠를 처음 볼 때부터 그에게 설렜던 디. 파멸조차도 에츠와 함께라면 두렵지 않다. 

 

 

 

 "당신을 도와줄 여유가 없어요. 만날 사람이 있어."

 

 처음으로 사랑을 받아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행복해할 정도로 애정결핍인 에츠. 에츠에게는 복수해야 할 상대가 있다. 드디어 복수해야 할 상대를 찾았다. 그런데 자신을 사랑하는 디를 만나게 되고, 자신에게 보여주는 애정이 너무나 달콤해 조금만 더 이 순간을 즐기고 싶다는 욕심이 들어 복수의 시기를 미루고 싶어진다.

 

 

 

 

 

※ 강스포일러 주의 

 

 

 

 

 

 

 

 

 

 

 에츠가 복수해야 할 상대는, 그가 NASA의 연구원 폴 일렌으로 살아오던 시절에 만든 안드로이드인 마키나. 마키나는 채원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것을 밀고했을 뿐만 아니라, 채원을 무척 따랐던 마샬 해리스에게 지독한 방법을 사용하여 안드로이드라고 세뇌시켰다. 

 

 자유로워져, 마샬. 그게 내 유일한 속죄야.

 

 자신으로 마샬의 인생이 망가졌다고 생각하는 채원. 속죄의 방식으로 죽음을 택했지만 다행히도 마샬이 위험을 무릅쓰고 구출하여 살아났다. 하지만 마샬은 한계에 다다른다. 늘 채원을 잃어왔던 마샬. 이제는 채원을 무너뜨려서라도  곁에 두고자 한다. 하지만 채원은 그런 마샬이 외롭게 지옥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억지로라도 합의의 관계를 만든다. 마샬이 내미는 수상쩍은 약도, 감시 장비로 가득 찬 아파트에 머무는 것도 모두 받아들인다. 약으로 인해 임신할 수 있는 몸으로 개조되었음에도, 마샬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참아낸다. 사실 채원이도 어떤 면에서는 완전히 비틀려진 인간이라 마샬의 행동을 견뎌낼 수 있었겠지만, 그래도 감탄스러울 정도로 수용한다. 

 

 "나는 이러고 싶었어요. 아주 어릴 때부터 당신에게 이러고 싶었어. 당신이 내 선생님이던 시절부터 당신을 범하고 싶었고 무너뜨리고 싶었어요. 정말 사랑하는데."

 

 그웬돌린님은 대개 연상공인 작품이 많은 편인데, 이 작품은 무려 여섯 살이나 어린 연하공이다. 연하공을 좀 더 선호하는 나로서는 작가님 작품을 읽으면서 아쉬울 때가 아주 가끔 있었는데, 이렇게 귀한 연하공을 영접하게 되어서 무척 기뻤다. 늘 고고했던, 멀고 어렵기만 했던 연상수를 무너뜨려 가지고 싶어하는 연하공. 너무 완벽한 거 아닌가요? (감동) 게다가 (아마도) ★동정공★이기까지...???? ༼;´༎ຶ ۝ ༎ຶ༽ !!! 너무 내 취향만 때려박은 설정이었는데... ꒦ິ⌓꒦ີ 

 

 

 

 

 

 작가님의 오랜만의 신작이라 기대가 컸던 탓에 아쉬움도 있었지만, 즐겁게 읽었던 작품이었다.

 

 작품 초반의 분위기와 캐릭터 설정이 매우 내 취향이어서 즐겁게 읽었는데, 작품 초반에 마샬과 채원이 툭툭 주고 받는 대화나 둘의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예를 들면

 

 1) 

 

 "당신, 어디 아파요?'(=정신에 이상있니)

 

 에츠가 조심스럽게 묻자 남자는 환하게 웃었다.

 

 "아니요, 아무데도 안 다쳤어요. 후……, 걱정해줘서, 진짜…… 고마워요."

 

 에츠는 이 동문서답에 할 말을 잃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 

 

 "그렇게 술을 마시는 건 건강에……."

 

 "아까 죽인다고 협박하신 분이 남의 건강을 논하십니까? 신경 끄세요."

 

 말 한마디 한마디 옳지 않은 게 없어서 디는 입을 다물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3)

 

 나는 지금 하고 싶어. 너와, 이 욕망을 갈가리 찢어서 없애버리고 싶어. 그러니까.

 

 에츠가 입술을 벌리는 순간, 페이퍼가 쓴 약을 삼키는 얼굴로 고해성사를 했다.

 

 "전 인간이 아니에요."

 

 ? (<-에츠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안드로이드입니다."

 

 욕망이 순식간에 파시식 식어버렸다. 

 

 (…)

 

 에츠는 이제 살기가 싫어졌다.

 

 (이후 에츠는 위스키를 꺼내 병나발을 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4)

 

 표정 관리가 안 되어서 얼굴을 아예 돌리고 있는 에츠는 귀여웠다. 지금 창밖은 어두워서 그의 표정이 고스란히 비쳐 보이는데 그걸 인지조차 못 할 정도로 그가 당황했다는 게 더욱 사랑스러웠다. (…)

 

 "음, 얼굴. 창에 비치는데."

 

 그러자마자 에츠가 얼굴을 홱 돌렸다. 반대쪽으로 돌린다는 것이 디에게 정통으로 얼굴을 보여주는 셈이 되어버렸다. (너무 귀여운거 아니냐고 ㅋㅋㅋㅋㅋ)

 

 이런 장면들이 좋았다. 평행 세계 버전으로 에츠와 디의 초반 분위기의, 솜방망이로 투닥투닥 거리는 가벼운 개그물 같은 소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갈라테이아에서 또 좋았던 점은 두 주인공 뿐만 아니라 조연들까지도 매력있는 캐릭터들이라는 점이다. 마샬의 어머니였던 줄리아 해리스, 호안 지아코, 심지어는 마키나(정말 나쁜 놈이긴 한데..)까지. 현재 단행본으로 출간하실 계획은 없으신 듯 하여, 아무래도 외전을 기대하긴 어렵겠지만 언젠간 외전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마샬과 채원이의 아이들 이야기도 매우 궁금하기도 하고.

 

 아쉬운 점은 우선 SF물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안드로이드라는 소재에 대한 기대가 컸었는데, SF물로서의 매력이 도드라지는 편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약쟁이 하일의 약 때문에 갑자기 유사 오메가버스 세계관이 되었고, 그 뿐만이 아니라 이 약에 다소 과한 설정이 덧붙여져 있어서 SF물이라기 보단 판타지물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오메가버스 세계관은 달가워하지 않는 편이라서 더욱 아쉬웠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악마가 되기로 결심하기 전의 마샬이 너무 내 취향의 캐릭터였다는 것이다. 사실 그 전에 이미 징조는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독특한 분위기가 감도는 매력적인 캐릭터였는데, 에츠를 무너뜨리겠다고 결심하면서부터 내가 좋아하던 매력 포인트가 사라진 것이 너무 아깝다. 

 

 

 

나만은 알지. 우리는 결국 우리 둘뿐이지. (…) 우리는 삐뚤어졌고 비틀렸지. (…) 우리는 비틀어진 상태로 서로 덩굴처럼 얽혀들었어. 

 

 

 

 운명은 언제나 청구서를 요구한다. 무언가를 받으면 내놓아야 한다. 갈라테이아를 받은 피그말리온 또한 청구서를 받았을 것이다. 그가 살아있는 갈라테이아를 보며 희열에 찼었던 만큼 청구서 또한 아주 강력한 것이었을 테다. 삶에 지름길 따윈 없으며 안전한 곳도 없다. 모든 것은 불완전하고 힘들다. 그것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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